그해 대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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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 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요 11:49-50)

율법에 의하면 대 제사장의 직분은 종신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위의 성경은 “그 해 대 제사장인 가야바”라고 말하고 있다. “그 해 대 제사장”이라는 말은 종신직이 아니라 한 해 단위로 대 제사장 직에 재임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 제사장 직위가 종신직에서 일년 단위로 제도가 바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역사적 근거가 무엇인가?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유대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는 정치적인 것 보다는 종교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다스리고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대 제사장이  유대 민족의  지주였다.

대 제사장은  일년에 세 차례씩  유대의  민중을  예루살렘에  모을 수 있었고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대 제사장이  유대  민중을 모았다기 보다  백성  스스로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찿아왔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러한  절기가  되면 일주일씩  또는 한달 가까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서 종교적 축제 프레이드를 벌였던 것이다.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작은  예루살렘  도시에  절기  때가 되면 250만명 이상이 모였고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피가  강 같이  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를 통치하는 로마의 총독부는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 있었다. 그러나  절기 때가 되면 로마는 총독부를 임시로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치안을  담당하였다.  로마가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 나라에서  일어나는  민중의  봉기 이였다. 로마는 해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몇 차례씩  갖는 유대의  종교적인  행사를  언제든지 로마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민중의  막강한  힘의 가능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로마는 이 힘을 다소라도 약화시키기 위하여 종교 적 행사의  지주가 되는 대 제사장의 권력을  약화 시키어야 했고,  대 제사장은 로마에 협력하고 어용하는 사람으로 앉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 제사장과 타협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당시 대 제사장이 이었던 안나스는 로마의 권력에 굴복하였다. 아나스는 로마로부터  정치와 경제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얻어내고 경제적인  부요도 보장받는 반면에  로마의  힘에 굴복하여 대 제사장 직에서 하야하게 되었다.(주후15년 경) 그때 부터 대 제사장 직은 일년에 한 치례씩 로마로 부터 신임을 물어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안나스는  그 후 그의  아들  다섯을  차례로  대 제사장 직에  앞세웠으며  마지막에는  그의 사위 가야바까지 대 제사장 직에 앉게 로마에 추천을 하고 승인을 받아냈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당시는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 제사장 직에 있었다. 안나스는 대 제사장인  가야바의 배후에서  실질적  모든 권한을 가지고 원격 조정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체포하여서  안나스에게  먼저 끌고 간것도 이 때문이었다.  안나스가 먼저 예수를 심문하고 다시 가야바에게 넘겼던 것이다. 아래 성경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 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요18:12-13)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요18:24)

그 해 대 제사장인 가야바는  “너희가 아무 것도 모른다” 큰 소리쳤다. 그라고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고 한 사람  의인 예수를 죽여서  민족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예수를 죽일 것을 결의하였다.

가야바는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고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해답을 얻을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열 사람의  죄인 보다는 한 사람의  의인이  더  중요하다.  죄인이 죄값으로 죽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죄 없는 의인이  억울하게  죽는다면  그것은 역사의 오점이 되는 것이다. 가야바는 대 제사장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죄 없는 의인을 죽이면서 까지  자기들의  영달을  추구한  타락한  제사장의  대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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