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Sanhedrin)공회와 출교의 형벌

산헤드린(Sanhedrin)의회 와 출교의 형벌 (23 downloads)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 함이러라.”(요9:22)

산혜드린 의회는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여 빌라도에게 넘겼다. 스데반을 정죄하여 돌로 쳐 죽여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나면서부터 소경 되었던 자가 예수를 만나고 실로암에 가서 씻은 후 밝은 눈으로 돌아왔으나 그에게 출교의 형벌을 내렸다. 이와같은 일을 결정한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공희는 어떤 기관인가?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의 포로기 후기부터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존속하였다. 회원은 71명으로 구성 되었으며 그 근저는 모세 시대에 70인의 장로를 세운 데서부터 기인하고 있다.

B.C 63년에 유대 나라가 로마에 점령되고 A.D 6년부터 A.D 66년까지 산헤드린의 권력이 가장 강력하게 부상하였으나 A.D 66년에 유대인 반란이 일어나자 계엄령이 선포되고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재 함락 되었을 때 산헤드린은 영구히 해체 되었다.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 회원은 당시 귀족계급이던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로 구성되었으나 후에 바리세인들이 잠시 회원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다.

로마는 로마가 다스리는 지역 안에서 로마의 법에 반역하지 않고 공공질서가 유지되며 로마의 조세정책에 반대하지 않고 세금을 납세하고 있는 한, 자기 민족적인 문제는 자기민족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였다.

비록 유대에 대제사장의 직위와 유대 왕권은 로마에 귀속되었으나 유대에는 유대인의 왕인 헤롯이 있었고,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이 있었으며, 유대의 종교와 도덕과 율법문제를 관장하고 의결하며 사법권을 행사 할 수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가 존립하여 있었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기는 안식일이나 이스라엘의 절기인 명절에는 모임을 가질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극형과 관련된 재판은 밤에는 개최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밤에는 사람의 감정이 분위기에 쉽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의 집회시간은 아침 희생을 드릴 때부터 저녁 희생을 드릴 때까지 이였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재판은 야간에 불법으로 행하여 졌으며 대제사장의 저택에서 비밀리에 행하여 졌다.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는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와(요 3:1절 이하), 예수가 십자가에서 희생 되어진 후 그 시체를 인수하여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지낸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요 19:38)사도들을 다 죽여 없애려고 모였던 공회 앞에서 공의로운 하나님의 뜻을 설법하던 가말리엘 같은 회원이 있었다. (행 5:33절 이하)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재판하는 데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로마는 관할 지역에 총독을 파송하여 점령지를 통치하였으나 전술한바와 같이 치안유지와 조세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그 민족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였다.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는 당시 그 나라의 최고 의결기관 이였으나 사형권 만은 총독의 허락을 받도록 하였다.

예수는 대제사장이 보낸 하속들에게 체포되고 대제사장의 관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에게 참람한 말을 한 신성모독죄를 적응하여 사형을 언도하고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 총독은 신성 모독죄에 대한 유대 종교에 관한 문제는 그가 관여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넘긴 무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요 18:31)

이에 저들이 대답하기를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했다.(요 18:31)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길 때는 신성모독죄의 죄목으로 넘기지 않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 민란을 모의하고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예수를 고소하였던 것이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공회 앞에서 일장의 설교를 하고 그들의 정죄를 받아 돌에 맞아 죽었다. 사형을 당한 것이다.(행 7장)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형제 야고보도 이스라엘 공회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아그립바는 대제사장 안나스 III세에게 책임을 물어 즉각 그 지위에서 해임 시켰다.

이로 보건데 스데반의 처형은 산헤드린의 무분별한 행동내지 그들의 간계에 의해 저질러 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산헤드린 공회가 가지고 있던 사법권 중에는 죄인에게 40에 하나 감한 곤장을 치는 것과 태장과 “출교”의 형벌 있었다.

사도바울은 공회로 부터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고 3번 태장을 맞았다. (고후 11:24-25) 태장은 가죽 채찍 끝에 납을 달아 치는 형벌로 살점이 묻어나는 사형에 가까운 형벌이었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정신적 육체적인 형벌은 “출교”의 형벌 이였다. 출교의 형벌은 모세 시대 때부터 율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총회에서 끊어지는 것을 가장 무서운 저주로 알고 있었다. 출교는 하나님의 총회에서 끊어지는 형벌이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새로운 법을 하나 의결 하였는데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 하였던 것이다.

출교의 형벌이 내려지면 하나님의 총회에서 끊어졌다는 저주 의식과 함께 누구도 이 사람과는 상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그와 가까이 서서 이야기 할 수 없으며 그는 완전히 사회에서 고립되어진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여 첫 번째 출교를 당한 자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로 예수가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한즉 실로암에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던 소경 이였다.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이 출교의 형벌을 두려워하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 한다는 형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로 시인되어지고 온 인류의 구속주가 되었다..

법은 순리적 이어야하며 법 자체를 사랑 할 수 있어야 그 법을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악법은 곧 폐지되어지며 악법은 생명이 짧다. 악법의 생명을 힘으로 연장 하려는 자가 독재자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최고의 사법권을 가지고 죄인에 대한 심판자로 군림하였으나 그 나라가 로마에 재 점령 당하면서 역사에서 자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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